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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를 제자로 둔 비운의 스승 - 버트런드 러셀과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은 빈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매우 부유했는데, 비트겐슈타인의 아버지는 철강업계의 큰 손이었다. 아버지의 영향에 의해 비트겐슈타인은 베를린 공대에서 항공공학 분야의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깊숙한 곳에 내재한 철학적 열정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비트겐슈타인은 당시 케임브리지에서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던 버트런드 러셀이 고안한 ‘러셀의 역설’에 강한 흥미를 느끼게 되고, 러셀을 찾아가기에 이른다. 버트런드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을 처음 접했을 때, 적잖이 당황한 듯하다. 러셀의 표현에 따르면 젊은 비트겐슈타인은 이상하리만치 열정적이었고, 드높은 러셀의 명성 앞에서도 저돌적인 도전을 서슴지 않았다.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이 ‘마왕의 자존심을 가졌다.’고 표현했을 정도인데, 따라서 이 사제 .. 더보기
유감 타인에게는 관대하되 자신에게는 엄격하라는 말이 있다. 지난 몇 년간 나는 타인에게 관대하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어느 정도는 관대해졌고, 어느 정도는 여전히 빡빡하다. 그래도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문제는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는 것이 어려움이다. 타인에게 관대해지려 애쓰는 것의 부작용은 결국 나 스스로에게도 관대해지기 너무 쉽다는 것이다. 오히려 모두에게 빡빡하게 행동할 때 나 자신에게도 엄격할 수 있었다. 사르트르같은 독설가는 타인에게도 지독히 엄격했다. 그리고 그만큼 스스로에게도 치열했다. 이를 통해 엄격함은 얻어냈을지 모르나, 그의 대인관계가 원만했다고 보기 어려운 사례가 많다. 관대함과 엄격함을 겸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잘 해내면 내 인격에 대한 수양이 될.. 더보기
대통주(죽통주)가 화제가 되고나서 다음 메인에 뜨는...경사(?)가 있고 나서 블로그에 이십만명에 달하는 네티즌이 다녀가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댓글이 200개가 넘게 달려들었습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네요. 어떤 이의 댓글은 조목조목 따져묻고 싶기도 했는데, 글을 잔뜩 썼다가 지우기를 여러 차례 했습니다. 뭐랄까...그런 기분이죠. 한 명, 한 명을 만나서 같은 이야기를 더 쉽게, 더 쪼개서 반복해야 한다는..? 죽통을 쪼개는 순간 끼쳐오던 그 냄새와 눈앞에 여지없이 펼쳐지던 괴기스러운 광경. 사진만 봐도 토가 쏠린다는 사람이 많은데 통을 벌렸을 때 나는 그저 아무 생각도 없었던 거 같습니다. 어안이 벙벙... 블로그질...열심히 해본 적이 없어서 이런 경험은 처음입니다. 좋은 정보에 감사하다는 사람들의 댓글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