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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Day

빌린 디카로 잠깐 놀아봤는뎁...

사진을 찍을 일이 있어서 디카를 빌리고.
돌려주기 전에 잠깐 갖고 놀았다. 아직 디카를 사지 않았는데, 요즘은 시세가 만만찮아서 당분간 생각 않기로 했다.
원래 찍어보고 싶던 것, 생각을 하게 만들던 것들을 찍어봤다. 카메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냥 오토로 찍는 거다.

창문. 생각나는 여자. 트리니티~
창문은 그 자체로 언제나 신비로운(뭔가 있음직한) 대상이다.


뺑뺑 도는 환풍구.



내려다 보이는 어니 집 계단. 가끔 저기서 고양이들이 볕을 쬐며 놀고 있는데.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



옥상의 커플. 언제나 저렇게 같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답.



누구나 한번씩 찍어보는 녹슨 쇳덩어리 접사.
입 안에 넣으면 어떤 맛일지 느껴지는 것 같은 질감. 아마 그 맛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여...



빨랫줄. 낡은 빨랫줄이어야 뭔가 그럴듯 한데.



군대 주임원사가 생각난다.
"야 그거 미친년 머리카락이야 뭐야?"



그러고 보니 저것은 건빵같다.
가끔 콘센트가 눈을 깜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고통스럽게 매달려 있는 콘센트.



피부트러블...



언제나 가로등은 길거리를,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가로등의 뒷통수.



딱 하나의 붉은 벽돌. 저런 녀석은 뭔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외로워 보인다.



계단 아래에 엉킨 먼지. 정말이지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곳에 엉켜있는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녀석들. 그러나 그날 찍은 사진 중에 가장 신비롭게 나왔다.
마치 식물처럼 자생한 것 같은 먼지. 그리고 계단을 지나던 누군가의 머리카락.
이렇게 여실한 존재였다. 



경첩. 경첩은 여자다. 내가 문을 열 때마다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러대는.
그녀는 천정과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보기 힘들다. 그녀의 뒷통수는 이렇게 생겼었다.



비상구. 비상구 그림의 전속모델은 언제나 급히 문 밖으로 뛰어나가는 순간에 멈춰있다.
마구 흔들어대니 '아주 급박한 비상구'처럼 되었다. 요즘 내 심정이 이렇다.



공포영화의 장면같다. 내가 사는 건물의 복도.



누구나 해보는 접사질. 빛과 어둠이 만나는 자리.



도서관 가는 길. 정말 지겨운 계단.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징검다리의 센스. 
하필 웅덩이도 딱 저기, 전봇대 때문에 좁아지는 자리에 생기냐. 



학교에 있는 기울어진 가로등. 



그날 생각하던 것을 노트에 적고 찍어봤다.
글을 읽는 것과, 글자를 찍은 사진을 보는 것은 다르다. 
글을 읽을 때, 사람은 글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글 속의 내용을 보게 된다. 
그러나 사진을 통할 때, 사람은 글자를 외면할 수 없게 된다.
이 사진을 본 후배의 말을 듣고, 글자 연습을 시작했다.



노트.



웅덩이2. 이질적인 만남. 다만 물이 고여있을 뿐인데.
끝없는 하늘과 하늘을 향해 자란 나무들이 갑자기 보도블럭과 만난다.
뭐라 설명도 할 수 없는 일. 언제나 물이 고인 곳이라면 어디서나 발생하는 일이지만.



조형대 뒤에 있는 조형물. 물신주의 비판을 위한 장난 설정.



상원이네 집으로 가는 좁은 골목의 가로등.




잠시 학교 도서관에 들르던 길에
빌린 사진기를 갖고 놀았다.
사진이란 참 매력적인 것.
다시 사진기 지름신께서 내 등을 긁는다.

사진에 대해선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사진기를 소유해본 경험은 초등학교때 이후론 없었다.
사진을 찍고싶다. 어떻게 하면 잘, 예쁘게 찍는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어느 순간 보이는 것. 그런 것들 모두가 찍어 마땅한 것일테지.

그런 생각에 보정도 하지 않았다. 어떤 사진들은 조금 밝게 보정할 걸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