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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 생각

니체, 디오니소스를 꿈꾼 청년

니체의 고교 성적표

철학자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의 고교 성적은 어땠을까? 그는 영민한 두뇌의 소유자인 것은 확실해보이나, 모든 과목에서 높은 성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니체는 언어에 관해서는 확실히 뛰어난 성적을 받았다. 특히 니체가 발군의 실력을 보인 영역은 독일어, 라틴어, 그리스어였는데 독일어와 그리스어에 관한 깊은 관심은 그의 철학적 방향과도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니체는 자연과학이나 수학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성적을 받았다. 특히 수학의 경우 '보통 이하'의 성적을 받았고, 이는 졸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었으나 니체의 독일어와 라틴어 성적이 높아서 참작되었다.

니체는 수학과 자연과학은 인간의 삶과 동떨어진 것 같아 큰 관심을 느끼지 못했다. 대신 그는 문학과 음악에 심취했다. 자주 시를 썼고, 작곡을 하기도 했다. 니체는 음악을 싫어하거나 듣지 않는 사람은 범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거장 바그너와의 만남

니체는 24살의 젊은 나이에 독일 바젤대학의 교수가 된다. 이 무렵 그는 음악가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와의 교류를 시작하는데, 바그너는 젊은 니체를 대단히 높게 평가했고 아꼈다. 바그너와 니체는 철학자 쇼펜하우어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는데, 이러한 성향의 공통점은 그 둘을 이어주는 중요한 다리가 되었다. 니체는 바그너의 첫인상에 대해서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쓴 바 있다.

"나는 한 인간을 발견했다. 쇼펜하우어가 일찍이 '천재'라고 불렀던 모습을 바로 이 사람이 나에게 보여주었다. 이 사람은 그 심오한 철학에 완전히 젖어있었고, 그가 바로 바그너일세. 신문이나 비평가의 비평은 무시해도 좋다. 아무도 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아무도 그를 평가할 수 없다....그것은 매우 심오하고 감동적인 인간성이며, 고귀하고 신중한 삶이기 때문에, 그의 곁에 있으면 나는 신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강대석, 『니체평전』中)

니체와 바그너의 친분이 영원히 지속된 것은 아니다. 둘은 훗날 결별하게 되는데, 그 원인을 바그너의 아내에게서 찾는 사람도 있다. 바그너 내외는 니체를 각별하게 대했고, 당연히 바그너의 아내인 코지마와 니체는 가까웠다. 니체와 코지마의 관계는 그런 점에서 의심스러운 지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코지마는 니체가 선호하는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도 참고해야 할 것이다.


24살의 조숙한 교수

당시 24살에 불과했던 니체가 교수로 임명되는 일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독일은 대학원이 없고 대학 4년의 교육을 받은 사람은 박사학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박사학위를 얻는다고 해서 교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조교의 역할은 할 수 있지만 강의는 할 수 없고,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교수자격인정'을 받아야 한다. 한편으로 교수자격을 인정받더라도 교수직을 갖지 못한 사람도 많다. 그런 점에서 교수인정은 물론, 박사학위도 없는 니체가 교수직에 정식 임명되는 것은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이후 니체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려 했는데, 대학에서는 니체의 저술을 비롯한 업적을 인정해 시험 없이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이러한 니체의 천재성을 알아본 사람은 그의 스승 리츨(Ritschl)이었는데, 리츨은 39년간 교육생활 중 니체처럼 조숙한 천재는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현세 긍정의 정신

니체는 종교를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세를 긍정하려는 니체의 철학적 노선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는데, 이러한 그의 신념은 대단히 확고하였다. 한 때 친하게 지냈던 로문트(Rohmundt)라는 친구가 신학자로 진로를 정했을 때, 니체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8년 동안 사귄 친구가 이제 참된 정신의 자유에 대해 은밀한 암살을 시도하고 있다. 그것이 그를 끝없는 불행으로 밀어 넣었다."

니체는 눈물로써 친구를 설득했다. 둘은 오랜 논쟁을 했고, 결국 로문트는 교수로 진로를 바꾸었다. 그는 이후 문헌학 연구를 시작했고, 니체는 이 소식에 매우 기뻐했다. 이러한 니체의 성향은 종교에 대한 반감보다는 현세를 긍정하려는 디오니소스적 정신과 관계된다.


니체라는 존재와 우리의 오늘

예민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평생 질서에 투쟁했던 니체. 온갖 엇갈린 평가로 니체만큼 많은 오해를 낳은 철학자도 드믈 것이다. 그의 디오니소스적 사유는 무엇이며, 과연 우리에겐 어떤 물음일까?

숨 가쁘게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현대 사회에서 과연 '오늘'은 미래를 위한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값진 오늘, 값진 현실을 위해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니체의 영혼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디오니소스일지도 모른다.



참고서적 : 강대석, 『니체평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