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나서/영화

몬스터 (미국, 2003)


샤를리즈 테론. 세기의 미녀. 몬스터를 보면 도저히 미녀로 보일 수 없는 한 여자 살인마가 나온다. 특수분장의 덕이겠지만, 배우 샤를리즈테론은 사형수 아일린워노스와 거의 똑같은 모습이라고 한다. 아일린워노스의 생전 주변인들이 영화를 찍으러 온 테론을 보고 귀신보듯 놀랐다고...

...어쩌면 에일린워노스는 어느 정도 이상의 환경이 받쳐주었다면, 반대로 세기의 미녀가 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영화의 감독은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나는 옛날에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던 적이 있다. 살인범의 본질은 '악함'이 아니라 '무능'에 있다는. 물론 악한 살인범도 있겠지만, 삶의 선택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도 있기 때문에, 불가항에 해당하는 살인범도 있을 것이라고. 물론 내가 그들과 친구가 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여야만 한다는 이상한 의무감도 들었다.
태어남은 불가항력이다. 도저히 태어난 당사자로서는 막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태어난 곳에서 최소한의 반찬과 국이 끓는 냄새를 맡기도 전에 더러운 쓰래기 냄새를 맡고, 누군가가 쓰다듬어주는 부드러운 손길을 배우기 전에 따귀를 후려치는 따가움을 먼저 배우고, '엄마 해봐~'라는 소리를 듣기도 전에 상스러운 욕설을 먼저 배울 수 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

마음을 열기도 전에 방어의식, 피해의식을 먼저 배우고, 남에게 배풀기 전에 남의 것을 훔쳐서라도 내것을 만들어야만 살 수 있었던 사람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안 좋은 선택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라도 사람에게는 선택권이 있기 때문에 나쁜 길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는 논리. 그것은 결코 완전치 못하다. 진리가 아니며 단지 듣기 좋은 착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은 '유능함'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참된 사람'이기 보다 '유능한 사람'이다. 나쁜 선택을 하는 사람들. 이들은 실제로 나쁜 사람일 수도 있지만, 무능한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3번 정도 걷잡을 수 없이 슬펏다. 억누르고 참으면서 우는 것 만은 막아냈지만, 사실 내가 울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은 흐느끼고 있었으니까.
이 영화가 과연 아일린워노스의 진심과 실생활에 얼마나 근접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일린워노스 자신은 대인관계에 무척 서툴렀고 창녀였고 거지였다. 그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몇 안된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무능'과 '불가항의 환경'이 부르는 비참한 결과에 대해 논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가슴 깊이 공감했다.

사막에 자랄 수 있는 식물은 선인장을 비롯한 극 소수 뿐이다. 많은 식물들은 초원과 산, 그리고 정글에서 자란다. 적어도 내가 사는 곳은 초원 또는 산 정도가 되기에 나는 감사한다.
사막에서 자라지 못하는 난초에게 누가 욕할 수 있는가.

아일린워노스는 10대에 아버지의 친구에게 강간을 당한다. 사실 아버지가 친구에게 돈을 받고 딸을 판 것이다. 그곳이 사막이 아니라고 말 할 사람 누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