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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 생각

궤적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경주로 소풍을 갔었어.
벌판이 있었어. 꽃이 단 한송이만 피어있더군.
어릴 적에 그래도 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지.
풍매화, 충매화...뭐 이런 것 들을 난 알고 있었어.
꽃은 떼지어 피는 법이지. 그런데 그 벌판엔
딱 한송이만 꽃이 피어있었던거야.
딱 한송이만.
어떻게. 거기에. 혼자.

아마 어떤 짐승이 꽃밭을 기어다녔겠지.
그렇게 몸에 씨앗을 붙여다녔을거야.
산책을 다니던 길목이었을 수도.
아니면 먹잇감을 쫒아가던 길이었을 수도.
반대로 쫓겨다니던 길이었을 수도 있겠지.

그러다 그 벌판에 잠깐 쪼그러 앉았던 모양이지.
그리고 씨앗은 거기에 떨어진 거야.
거긴 잔디밖에 없었지만
그 한 가운데 혼자서 꽃이 하나
핀 거지.

사람들은 행성의 궤적을
곡선으로 표현하지.
그러나 신은.
짐승의 궤적을
꽃으로 표현해. 

난 말없이 그 벌판을 바라보고 있었어.
그리고 그 짐승의 생의 일부를 상상했어.
그날 벌판에서의 난
운좋게도 그 궤적을 잠깐 보았지만
세상엔
여전히 많은 것들이 남아있을 테지.

난 아직 세상을 보지 못했어. 
 

2007/04/20 1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