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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나무

어두웠던 밤. 나는 나무가 빼곡히 자라고있는 숲에 들어갔다.
서늘한 공기에 닿은 피부가 놀라 소름이 돋았고,
밟히는 땅은 이상하리만치 부드러웠다.
그래도 달빛이 있어, 나는 길을 잃지 않았다.
너무나 어두웠기에 식별이 쉽지 않았으나,
달빛에 비친 나무들의 몸통은 아마 노란색이었으리라.


그 숲 속에 우리 어머니가 묻혀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를 거기서 꺼내기 위해 이곳에 왔다.
달빛은 어머니 묻힌 곳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습기찬 공기가 가슴 깊은 곳까지 적셔왔다.
노란 나무들이 들어찬 구석에
어머니가 묻혀있었다. 나는 슬퍼졌다. 


나는 맨손으로 땅을 할퀴어내기 시작했다. 
움직일 때 마다 슬픔은 깊어갔다.
손 끝은 아마도 많이 상했겠지만. 나는 아프지 않았다.
달빛이 너무나 약했고, 바람은 서늘했으므로, 나는 마취된 듯
몽롱하게, 흐느끼면서, 땅을 할퀴기를. 그렇게 반복했다.


어두운 정적 속에서 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멀리까지 퍼졌다.
이따금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스산하게 바스락거렸다. 부서지도록 나는,
어머니를 애타게 찾았다.
가지를 스치는 바람이 우우하면서 울고 웃었다.
달빛이 조금만 더 밝았으면 좋았으련만. 추위에 허리가 아팟다.


어두운 구덩이 속에 보이지도 않는 땅을 뜯어내던 나는.
구덩이 속에서 어머니의 오른손을 잡았다.
그녀의 차가운 손을. 엄마였다.
나는 부여잡았다. 그렇게 으아 울었다.
엉킨 진흙들이 눈물에 씻겨졌다.
너무나 그리웠던, 몇 개의 흉터가 아직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과 팔뚝과 어릴 적 만지던 젖가슴과...그 얼굴.
보고싶었다. 그녀가 손에 잡히는 곳에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땅은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나 굳게 어머니를 물고 놓지를 않았다.
나는 문득 알 수 있었다. 내가 그 땅을 움직일 수 없음을.


어머니를 칭칭감은 노란 나무의 무거운 뿌리앞에서
숨이 멎는다.
양 손이 이미 부서져서
나는 어머니를 구해낼 수 없다.
뿌리들은 너무나 질겼고,
꿈쩍도 않는 뿌리를 맥없이 잡아당겼다 놓았다.
만질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오른손 뿐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하늘을 한번 보았다.
별빛도 달빛도 희미했다.
안개와 어둠이 가득찬 숲에,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소름이 돋고 숨이 가빠왔다.
강풍이 나무에 스치는 소리 한바탕 들렸다.
그렇게 한 무더기의 나뭇잎이 바람에 실려 날려댔다.
희미한 달빛에 비친 나뭇잎은
새파란 만원짜리였다.


노란 나무는 위압스럽게 나를 내려다 본다.
차거운 나무의 몸통에 핀 나뭇잎은
죄다 시퍼렇고 날카로운 만원짜리.
어머니를 칭칭감은 나무였다.
그 나무가 미워져서 나는 울었다.


언제부턴가 노란나무만이 자라는 숲 속에...
어머니를 비추는 달빛은 시리기 그지없고
바람은 오만하고 무서웠다.


너무나 슬퍼져서
나는 그만 죽고말았다.




fin.

학자금 때문에 목숨을 끊은
한 어머니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