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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와르


 

나는 차에서 내렸다. 말없이 운전만 하던 까만 양복의 남자도 뒤따라 내렸다. 나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맑은 하늘이었다. 까만 양복이 내 뒷통수를 냅다 후려쳤다.

 

"아욱"

 

눈 앞이 크게 흔들렸고, '띵' 하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뒷통수에 뜨거운 작열감이 일었다. 목덜미를 타고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까만 양복은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건 자그마한 권총이었다. 나무냄새가 진한 바람이 불었다. 이렇게 한적한 숲이 있다니. 이런 곳이 있는줄 알았다면, 매년 여름 피서를 왔을텐데. 까만 양복은 내 왼쪽 눈에 총구를 갖다대었다. 내 눈앞의 세상 반절이 까만 총구로 가려졌다.

 

"조상현씨. 맞지?"

 

"...네."

 

바람이 분다.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피는 멈추지 않았다. 뒤통수 껍데기만 아픈게 아니라 두개골 안쪽까지 쑤셔왔다.

 

"형님이랑 아는 사이였어?"

 

까만 양복이 물어온다. 형님?

 

"아니,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럴리가 없는데..."

 

나는 맹새코 그 '형님'이라고 불린 남자를 몰랐다.

 

"근데 왜 죽였어?"

 

까만 양복은 총구를 거머쥔 손에 힘을 더했다. 총구는 눈을 지그시 눌러들어왔고, 그래서 아팠다. 나는 약간의 비굴한 비명을 질렀고, 그제서야 까만양복은 손에서 힘을 뺐다. 지랄같이 맑은 하늘이었고, 숲속은 너무나 고요했다. 아름다운 숲이었다.

 

"왜 죽였나고 묻잖아..."

 

왜 죽였냐고 묻고있다. 까만 양복이. 하지만 나는 대답하기 곤란했다. 내가 지난 1년간 경험한 그것을 누가 믿어준단 말인가. '계시'라는 것은 받은 당사자만이 이해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성자들이 제아무리 계시에대해 떠들어댄들,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신자가 어디있겠는가.

녀석이 방아쇠고리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틱"

 

온몸이 서늘해지는 공포. 6연발 리볼버식. 탄창의 6개 구멍에 단 한발의 총알만이 들어있다. 까만 양복은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고있다.

 

"몇번째가 총알인지는 나도 몰라."

 

입안이 바싹 말라왔다.

대략 1년 전이었다. 27세의 나는 지옥같은 세상에 살고 있었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가볍기 그지 없었던 나는 숨통만 붙어있었지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병신이었다. 여자친구를 사귀어본 적도 없었고, 우정을 나눌만한 친구도 없었다.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다섯평 남짓의 좁아터진 월세방. 그 안에서 소리내며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나라는 인간과 병신같은 냉장고 한대가 전부였다.

 

지독하게 갑갑했다. 뭔가가 가슴을 짓이길 기세로 누르는 것 같았다. 텅빈 방, 냉장고, 그리고 나. 나는 무작정 밖으로 나갔고, 아스팔트위를 걸었다. 하늘은 맑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해가 떠 있는데도 비가 내리는. 뜨뜻한 비를 맞으면서 나는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그게 내가 떠날 수 있는 여행의 전부였다. 그정도로 나는 약하고 멍청했다. 동네를 한바퀴 돌아 내 집 앞 수퍼마켓에서 나는 작은 목걸이를 주웠다. 비싸 보이기도하고 싸구려같아 보이기도 했던 목걸이. 나는 그걸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내 방에 들어와 앉았다. 벽에 기대어 앉아서 무릅 사이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이게 가장 편한 자세다. 그렇게 나는 잠들었다.

 

까만 양복이 총구로 눈을 쿡 찌른다. 굴욕감도 들었지만 이것은 총구다. 압도적인 위압감 앞에 나는 쪼그라들어 있었다.

 

"왜냐고"

 

까만 양복은 집게손가락에 또 한번 힘을 준다.

 

"틱"

 

총구에 눌린 왼쪽 눈 부터, 목구멍까지 서늘한 바람이 지나갔다.

 

1년전 그날, 월셋방에서 웅크려있던 나는 조용히 한숨 잠을 잤다. 그리고 밤에, 27년동안 꾸어본 꿈들 중에 가장 달콤하고 아름다웠던 꿈을 꿨다.

꿈 속에서 나는 한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바로 그 금빛 목걸이를 매고 있었다. 나는 후줄근한 팬티와 러닝셔츠차림이었는데, 그녀는 그런 나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유럽 어딘가 먼 나라의 노래를 불렀다. 나를 위한 노래를 불렀다. 왜 그녀가 나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지, 내게 노래를 불러주는 지 알 수는 없었다. 나는 그저 고맙게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서, 나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사랑이란 것을 받아본 적 없었던 나는, 꿈 속에서나마 여성의 사랑을 받았다는게 경이로웠다. 그녀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그리웠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목걸이의 주인이 바로 그녀 아닐까. 그렇다. 참말 맞을 터였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런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언젠가 저 수퍼마켓 앞에서 꿈속의 그녀와 닮은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이 목걸이를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크흠."

 

까만 양복이 헛기침을 한다.

 

"말 하기 싫어?"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까만 양복은 말없이 한번 더 방아쇠를 당긴다.

 

"틱"

 

3번째 불발. 이제 나머지 3번중의 한번은 총알이다. 어차피 살아날 수는 없었다. 내가 여기에 끌려온 이유는 '죽기' 위해서다. 까만양복은 단지 지금의 순간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나는 죽을 것이고, 그녀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나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 금목걸이가 재수없는 물건이라는 것을. 그녀의 망령이 내 몸에 달라붙은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을. 그러나 나는 괜찮았다. 살아가는 데 목적이 없었던 내게, 허접하게나마 목적을 던져준 것이 그녀였으니까.

내 외모가 변한 것도 알고 있었다. 내 사지는 더욱 말라갔고, 눈빛은 쾡해졌다. 정신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져서 매일같이 골방에서 자위행위를 했다. 언제부턴가 내 호주머니에는 작은 칼이 하나 들어있었다. 칼을 손 끝으로 만지작거리면, 그녀의 먼 나라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야."

 

까만 양복이 말했다. 나는 오른쪽 눈을 들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놈이 방아쇠를 재차 당겼다.

 

"틱"

 

불발이다. 이번엔 놀라지도 않았다. 이 리볼버가 영원히 불발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바람이 분다. 나무냄새와 흙냄새가 진한 바람이다. 아, 그리고 그녀의 노랫소리가 시작되었다. 마취약처럼 몽롱한 그녀의 노랫소리.

 

우리 어머니는 무당이었다. 어릴 적에 어머니가 굿판에서 무아지경에 빠져 날뛰는 것을 몇번 본 적 있었다.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어머니는 귀신이 들르지 않았을 때도 귀신이 들른 척을 했다. 어떨때는 진짜 귀신이 들를 때도 있었다. 나는 언젠가 귀신이 들른 어머니께서 5미터 가량을 뛰어오르던 것을 본 적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알고 있다. '빙의' 가 어떤 것인지. 나는 빙의되어있다. 그녀의 노랫소리는 죽은 원혼의 울음소리였다. 그러나 그 노래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오르가즘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르가즘 직전의 쾌감으로 느껴졌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숨지고, 귀신에 미쳐있던 어머니가 간질발작으로 숨지고, 나는 5평 남짓 월셋방에 버려지고. 나는 사회속에 자생할 수 없는 약해빠진 짐승이었다.

서서히 말라들어가던 나는, 수퍼마켓 앞에서 고급 검정색 승용차 석대를 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말없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노랫소리는 점점 커졌고, 점점 슬퍼졌다. 내 온 몸은 기운으로 충만했다. 가운데 승용차에서 두목급의 덩치 큰 남자 하나가 내렸다. 다른 까만양복들이 남자를 애워쌌다. 두목은 손을 흔들었고, 조직원들은 다시 자동차에 탔다. 두목은 혼자 수퍼마켓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정신없이 달려갔다. 조직원들은 나를 힐끗 보긴 했지만 신경쓰지는 않았다. 나는 작고 야위었으며 러닝셔츠에 팬티하나 걸친게 전부였다. 이 동네에서 가장 약하고 불쌍한 존재가 나였다. 조직원들은 나를 혐오스러워해 하긴 했지만, 경계대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수퍼마켓 안에서 두목은 요구르트를 고르고 있었다. 포도맛 하나와 사과맛 하나를 들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녀의 노랫소리가 어느때 보다도 절박하게 들려왔다. 내 호주머니에서 칼을 꺼냈고, 녀석을 찔렀다. 머리가 하얘지도록 그녀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나는 절정감에 몸서리쳤다. 칼이 녀석의 몸을 연거푸 찔렀고, 나는 짐승들이 흘레붙는 것처럼, 녀석과 뒤엉켜 꿈틀거렸다. 찔렀다 뺏다를 반복하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고, 그녀의 의지였다. 그것이 교미와 비슷하다면, 그놈과 교미를 하는 것은 나의 칼이 아니었고, 그녀의 성기였다.  그놈의 숨통이 끊어지고 나서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나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오르가즘이 곧 나의 오르가즘이었고, 그래서 그때 나는 너무나 찬란한 쾌락에 몸부림 칠 수 있었다.

 

조직원들이 수퍼마켓 안쪽으로 뛰어들어왔고, 그들의 발길질이 내게 쏟아졌다. 어디론가 급히 전화를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날 급히 여기 저기 전화를 하던 목소리. 그 목소리였다.

 

"말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바람이 분다. 날씨가 지랄같이 좋았다. 그녀의 노래소리가 들린다. 내 목에는 그녀의 금목걸이가 걸려있었다.

 

놈이 다섯번째 방아쇠를 당긴다. 리볼버 탄창이 회전하고, 공이가 뒤로 젖혀진다. 여자의 클리토리스처럼 총알의 뇌관이 모습을 드러냈고, 공이는 뇌관을 향해 거칠게 달려든다. 그녀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탄약이 폭발하고, 탄두는 전진한다. 탄창을 벗어나 총신을 할퀴며 뛰어간다. 총신은 쾌감에 몸을 떨고, '타앙'하는 신음소리를 낸다. 마치 정액처럼, 탄두는 총구를 통해 배출되고, 리볼버는 최고의 쾌락에 몸서리 친다. 탄두가 미쳐 배출되기 직전, 어머니와 아버지와 나의 냉장고와 그녀의 목걸이가 눈앞을 스쳐지나가고, 중학교때의 첫사랑 얼굴이 갑작스래 떠올랐다.

 

방아쇠를 완전히 당긴 까만양복의 집게 손가락이 눈에 보인다. 허공에 멈춰있는 민들래풀씨도 하나 보인다. 리볼버 탄창 언저리에서 멈춰있는 탄약의 연기도 보인다. 까만 양복의 동공에 내 비굴한 모습이 비쳐 보인다. 시간은 멈춰있는데 그녀의 노랫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그녀의 노랫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