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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야기

이 이야기는 2492년 한 유전공학자의 일기다. 특이하게도 존댓말로 자기고백을 하고있다. 그는 몇송이의 계량품종 화초를 개발했고, 그 업적은 세기에 길이 남을 정도는 아니었더라도 쓸만한 정도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는 자기 생애 최고의 작품이자 최후의  작품을 개발하고 연구생활을 끝맺었다. 그는 은퇴이후 작은 꽃집을 경영하면서 소박하게 살다 죽었다. 이 일기는 최후의 작품이었다는 한 유전자 조작 화초에 대한 고백이다.

 

*성취에 대하여-2492년 10월 25일.

나는 연구에 몰입해 있었습니다. 아이디어가 딱 하나 떠올랐었습니다. 최근 나는 화초의 '생존목적'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생존목적이라는 것은 참 특별한 개념입니다. 과연 생존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인간은 왜 사는 것일까요. 그 어떤 선생님도, 친구도, 철학자도 답하지 못한 질문입니다.

그 누구도요. 그 누구도.

 

어쨋든. 생존목적이 생명의 유전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합니다. 생명체는 분명 어떤 방향성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 방향이 어떤 모양새인지 의식적으로 알 수만 있다면, 인간의 역사는 크게 변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 '생명'에 '시간'이라는 요소가 부합되면서 어떤 방향성을 갖고가는지. 그것은 너무나 어렵고 난해한 문제입니다.

 

왜 사는지. 그것을 알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소 편법적인 것이더라도, 삶의 목적을'설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물론 그것은 일종의 속임수입니다.

인간이 왜 사는지. 그것을 밝혀내지는 못했지만...'이렇게 이렇게 살아라'라고 명령은 할 수 있는 것처럼, 저는 화초에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근원적인 유전자의 수준에서 말입니다.

 

최근 개발된 나노프로세서는 마치 생명체의 세포처럼 작용할 수 있습니다. 제가 행한 것은 화초의 씨앗에 나노프로세서를 이식한 것이었습니다. 그 화초는 데이지꽃과 무궁화, 시금치, 난초 등의 유전자를 합성시켜 만든 꽃으로서, 생명력이 강하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저는 AI전문가인 친구녀석의 자문을 받아, DNA알고리즘을 하나 구축했습니다. 아주 극단적인 성향의 DNA알고리즘이었습니다. 그 DNA에 부여된 생존목적은 '끝없는 성취 욕구'였습니다. 마치 인간처럼 말입니다.

 

그 DNA알고리즘을 포함한 나노프로세서를 화초의 핵심부에 이식하는 것은 여렵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하이테크놀러지가 알아서 해주는 시대이니까요. 그리고 제가 구축해놓은 연구 데이터는, 다소 자랑처럼 들리겠지만, 화초의 DNA정보 정도는 꽤 자세하게 조작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있었으니까요. 어쩌면 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저는 미쳐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도 저는 미쳐있는지도 모릅니다. 지나치게 높은 IQ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화초의 유전자 코드 속의 '자연이 설정해 놓은 생명의 목적'을 살짝 삭제했습니다. 물론 가설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그 부분에 분명 조물주가 설정해놓은 '목적'이 입력되어있을거라고. 저는 생각했었습니다. 그 후, 그 빈공간에 '끝없는 성취욕구 나노프로세서'를 삽입해 넣었습니다. 화초는 'The mother'이라고 명명되었습니다.

 

the mother은 단지 평범한 화초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the mother이 아니었지요. 연구의 주된 관심사는 the mother이 생성해내는 씨앗이었습니다. 애초부터 '성취욕구'를 목적으로 두고 생성된 씨앗. 그게 어떤 품종일지가 관심사였습니다. the mother이 데이지꽃을 활짝 열었고, 저는 그 안의 씨앗을 채취했습니다. 다소 덩치가 큰 기형의 씨앗이었습니다. 강낭콩보다 조금 작은 하얀색 씨앗. 딱 한개가 the mother의 꽃 한 가운데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양질의 토양에 그 씨앗을 심고, 저는 꽃이 피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과연 어떤 모양의 꽃이 나올지. 세상의 자극에 어떤 식으로 반응할 지. 시간을 두고 성장의 추이를 지켜보면 어떤 '방향성'을 보일지. 저는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싹이트고, 잎사귀가 자라고, 봉우리가 생기는 과정까지는 여느 화초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유전자의 중추적인 부분을 치환해버린 탓인지, 성장속도는 다소 느린 편이었구요. 잎의 색깔이나 크기는 the mother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화초에게서 어떤 특별한 점을 발견하지 못해서 이름조차 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화초는 무럭무럭 자랐고, 어느날 부턴가 봉우리가 맺혔습니다. 아직까지 화초에서 '성취욕구'에 의한 징후는 찾지 못했습니다. '신이 설정한 목적'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아직은 발견하지 못한 단계였습니다.

 

봉우리가 터지고 꽃이 열리기 시작했을 때 부터였습니다. 저는 화초의 꽃이 the mother과 다소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꽃잎의 모양 차이였습니다. 하얗고 연약한 꽃은 갈래꽃이었고, 암술 하나에 수술이 5개 있었습니다. 꽃잎은 7장이었고 하얀 색이었습니다.

저는 그 꽃잎이 '날개'와 너무나 닮았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보통의 꽃들과는 너무나 판이한 모양이었습니다. 그 꽃잎은 분명히 천사의 등에서나 볼 수 있는 바로 그것과 닮아있었습니다. 일단 저는 'white winged-flower'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날개. 그리고 성취욕구. 저는 그 둘 사이가 어떤 관계에 있는 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결과가 그랬을 뿐입니다. 성취욕구가 생의 목적인 꽃. 그 꽃잎은 날개였다고.

 

...예전에 아버지께서 비싼 난초를 사온 적 있었습니다. 그 난초로 말할 것 같으면 난초의 평생 단 한번 꽃을 피운다고 하는 종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꽃은 하루만에 지고 만다 합니다. 그 꽃이 지고나면 난초는 죽을때 까지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곧 피어날 봉우리를 매단 그 난초를, 아버지께서 안고 오신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난초는 며칠 후 꽃을 피웠고, 그 하얀 꽃 아래로는 꿀들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매울정도로 향이 강했고, 그 압도적인 꽃은 저를 매혹시켰었구요. 그렇게 반나절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 왕성하던 꿀이 흐르기를 멈추고, 꽃잎이 쪼그라들기 시작하고 다시 반나절 후, 꽃은 지고 말았습니다. 생애 단 한번의 꽃피우기.

 

너무나 어릴 적이라서 그 난초의 이름조차 몰랐지만, 그 꽃은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저는 단 한번의 아름다운 꽃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가치가 너무나 무한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white winged-flower도 꽃을 단 한번 피울 수 있는 화초로 설정했었습니다.

white winged-flower의 생애 단 한송이의 꽃이 7장의 날개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꽃이 만개했을 때였습니다. 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7장의 날개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토양은 양질의 비료를 공급하고 있었고, 비닐하우스 안에는 비발디의 사계가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아름다움에 취해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도 잊고 있었는데,

white winged-flower이 갑자기 날개짓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 하얀 꽃잎이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white winged-flower는 분명 날개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왕성하게.

나는 꽃잎이 상할까봐 날개짓을 막아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꽃에 손을 댈 수는 없었을 겁니다.

흙 속에 뿌리를 박은 예쁜 꽃이, 하늘을 날고자 애처롭게 날개를 퍼덕이고 있는데, 그 누가 그 날개짓에 제약을 가할 수 있을까요. 꽃 술이 부서지고 잎사귀에 생채기가 생기는데도, 애처롭게 날개를 움직여대는 그 열정에 누가 반론을 재기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줄기가 흔들리고, 고운 토양이 흔들리고, 뿌리가 흔들리는 것을. 꽃이 생명줄인 뿌리를 포기하고 줄기 즈음에서 뜯겨져 잠시 허공에 떠오르던 그 광경을. 그 역동성을 감당하지 못한 예쁜 꽃잎들이 산산히 부서지는 것을. 공중에서 산산히 부서져 흩날리는 죽은 날개들을. 그리고 뜯겨진 줄기만이 남은 비닐하우스속의 white winged-flower을.

 

저는 울었습니다. 살아서 땅에 박혀있는것과, 죽어서 하늘을 나는 것. 너무도 명확한 선택을 했던 그 꽃 앞에서 나는 절망했습니다.

그 순수열정에게 지독한 비극을 선사한 존재는 바로 나였으니까요.

신의 뜻을 거스르고 white winged-flower에게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점지한 것은.

몹쓸 저의 과학적 호기심이었으니까요.

 

사진을 한장이라도 찍었다면 좋으련만...하지만 이런 아쉬움조차도 제게는 사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06년 4월 24일. the scientist를 들으며 흩어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