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ree write

정신병자.

"제가 갑자기 나타나서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낸 것이 불쾌하실지 모르겠지만, 부탁입니다. 그냥 삼십분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면, 저는 떠나가겠습니다. 뭐 경찰에게 잡힐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이 커피숍에서 나가자마자 곧장 자살을 할 예정입니다. 약을 먹던지 목을 매던지 뛰어내리던지, 그런 것들 중에 아무거나 하나 하는 겁니다. 뭐 어떻게 죽을지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오늘 새벽에 내가 사고를 낸 직후, 난 자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경찰을 피해 다닌 것은 아무래도 그들은 내가 원하는 순간에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목숨을 끊기 전에 그냥 아무한태나 제 이야기를 해주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러니, 부디 절 너무 욕하지 마시고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 같은 상황이 내게 행운이라고 느껴졌다. 그의 말투에서는 조금의 거짓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폐는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고 근육에서는 열기가 발산되고 있었다. 주위를 핥으며 빠르게 움직이는 그의 눈동자는 거짓을 말할 필요가 없는 사람의 것이었다. 나는 순간 호기심이 일었고, 어차피 혼자였던 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마침 메뉴판을 든 소녀가 나타났고, 나는 내가 마시던 것과 같은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전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신병자였습니다. 올해로 정확히 서른입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것은 15살 때부터이니까...제가 정신병자인 채로 살았던 것은 장장 15년입니다.


정신병자라는 사실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겪어보지 않으신 당신은 모를 겁니다. 당신에게서는 어떤 열등감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만일에 열등감을 갖고 있다 해도 그것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전혀 문제되지 않을 정도의 것이겠지요. 하지만 저 같은 사람은 다릅니다. 그 열등감과 수치는 누가 자극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가득하고, 그래서 정상적으로 사회를 살아갈 수 없죠.


게다가 제게는 ‘정신병자’라는 꼬리표가 붙어있지 않습니까. 치과나 내과, 정형외과에서 진찰을 받는 병자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겁니다. 어차피 이름은 같은 병원이지만, 정신병원은 다릅니다. 물론 당신도 아시겠지요. 사람들이 팔다리 붕대 두른 사람을 대하는 것과, 정신병자 수의를 입은 사람을 대할 때 같을 수가 없다는 것 말입니다. 물론 나도 잘 압니다. 누구보다도요. 그래서 괴로웠습니다. 당신에게 자세히 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시간이 없고 유쾌한 이야기도 아니니까요. 어쨌든 그 괴로움의 시간이 15년이었습니다. 제 전체 생의 5분의 1정도 되는 시간일 것이구요, 아름다워야 할 젊은 시간의 기억입니다.


저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친구를 사귀어본 적도 없어요. 사람들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어 본 적도 없습니다. 짧은 잡담도 말이죠. 물론 그 병원의 다른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많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은 정신병자입니다. 내 주위에서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눌 사람은 없었어요.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와 매일같이 상담을 나누던 의사는 사회인 대 사회인으로의 대화를 애당초 할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난 환자고 그 사람은 의사이니까요. 그들이 내 부모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본 적 있는데, 저와 대화를 할 때는 완전히 다른 태도였습니다. 저는 의사를 신뢰하지 않았어요. 당연히 의사는 내가 마음을 열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원인은 마지막까지도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삼일 전에 저는 퇴원했습니다. 장장 15년만에 제가 정상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지요. 병원에서는 장기적인 치료가 도움이 되었다고, 이제 남은 생은 사회에서 만끽하라고 말하더군요. 도움이 되었는지...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퇴원을 하자마자 제가 찾아간 곳은 매춘 굴이었습니다. 제게는 약간의 돈이 있었고 사춘기가 시작되자마자 부터 여자를 경험할 기회는 전혀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동료 환자들은 틈만 나면 자신의 성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저는 그러니까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서른이 된 이 나이에 여자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 그게 너무나 하고 싶었어요. 이해하실 겁니다.


저는 돈을 지불했고 늘어선 대여섯명의 여자들 중에 가장 착해 보이는 사람으로 골랐습니다. 배시시 웃더군요.
자그마한 방에 들어가서 우리는 일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그런 곳에 가는 것도 처음이었고 너무나 떨렸기 때문에, 옷을 벗기고 그 위로 올라탄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머쓱하게 느껴졌어요.
그녀는 최근에 개봉한 영화이야기를 하더군요. 제가 본 영화는 아니었지만 TV에서 그 영화를 소개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모르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와 유사한 소설작품에 대해 이야기했고,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더군요.


우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사회에 적응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녀는 나와 유사한 의견을 갖고 있더군요. 저는 의외로 그녀의 생각이 깊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그것에 적응한다는 것에 대해 그렇게까지 많은 연구를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그런 건 저처럼 장시간 병원에 갇혀 있으면서 ‘사회가 뭐 길래 나를 이런 곳에 격리시켰을까, 사회성이란 게 무엇이기에 내가 그걸 갖지 못한 걸까, 지금의 내 상태를 어떻게 개선해야만 하는 걸까’등등의 생각을 계속하는 사람들만이 추론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녀에게도 이 사회는 적응하기에 너무나 차갑고 거칠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었고 그녀는 이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세상을 위한 어떤 것이 되고 싶었고, 그 과정은 너무나 힘들었던 것입니다. 저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해댔습니다. 거지부터 헐리우드 스타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삶의 표본들을 끄집어내어 우리의 시간을 채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말로 저의 시간은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약정시간이 초과된 겁니다. 그녀의 가슴을 한 번 보지도 못한 채,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서 말이죠.
가야하냐고 물어 봤을 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하지만 제게 연락처를 주었습니다. 새벽에 퇴근할 때 만나주지 않겠냐면서요. 제가 한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고, 자기 집에 가서 더 이야기를 하고 원한다면 관계를 갖자면서요.


저는 순간 행복에 휩싸였습니다. 저는 퇴원을 하면서도 사회가 절 매몰차게 차버릴 줄만 알았습니다. 병원에서 수많은 교육과 고통의 시간을 감내했지만, 이 사회는 그걸 전혀 몰라준 채 절 다시 버리고 괴롭힐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군요. 단지 육욕에 대한 체험을 원했던 제게, 사회는 의외로 따뜻한 손길을 준 것이죠.
퇴근시간에 저는 전화를 했습니다. 윙윙거리는 헤어드라이기가 켜져 있는 곳에서 그녀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 매춘거리로 그녀를 맞으러 갔고, 그녀는 수수한 옷으로 갈아입었더군요.


우리는 그녀의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거리와 산소와 진화와 사랑과 꿈과...저를 자극했던 수많은 대상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녀를 괴롭혔던 이 세상의 문제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그녀의 집으로 저는 춤추든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자꾸만 내 이마와 입술에 입을 맞추더군요. 그것이 섹스와는 전혀 다른 사랑의 표현이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정리 안 된 집 안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히히거렸습니다. 마침내 그녀가 내 옷을 벗기기 시작했고요, 저도 그녀의 옷을 벗겼지요. 동료 환자들에게서 이야기로만 듣던 그것을 나도 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남성은 듣던 바와 거의 비슷하게 반응했습니다. 인간의 한 개체로서, 남자로서 나도 당당히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겁니다. 제게도 수행할 수 있는 성기능이 있었고 저는 처음이지만 꽤나 훌륭하게 그 일을 치러냈습니다.


기뻤습니다. 그녀도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입맞춤을 했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오늘 퇴원한 환자들 중에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일 거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사랑에 지쳐 우리는 잠들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오랫동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불안감이 갑자기 덮쳐들었으니까요. 제 옆에 잠든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을 보며 걷잡을 수 없이 불안해져갔습니다. 그녀의 잠든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는데, 내가 그토록 바라던 어떤 이상향이었는데, 이게 유지될 것 같지가 않았어요. 제게는 돈이 없고 직업도 없었습니다. 물론 취직이 잘 될 리가 없어요. 저는 교육도 받지 못한데다가 정신병자라는 거대한 꼬리표를 달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사귄다면 오로지 그녀의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판이잖아요. 그렇지 않은가요.


우리의 달콤한 만남이 얼마나 지속될까. 해가 떠오름에 따라 저는 불안에 떨고 있었어요. 그래요. 우리의 만남은 해가 떠오르자마자 끝날게 분명해요. 왜냐하면 더 이상 그녀에게 해 줄 말이 바닥이 났거든요. 제가 병원에서 그토록 연구하고 생각하던 것들은 의외로 양이 얼마 되지 않았어요. 물론 그것들의 깊이는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깊었지만 요점을 간추려 말해버리고 나니 정말 몇 시간의 대화꺼리도 안되는 것들이더군요.


그녀가 깨어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헐리우드 스타에서 거지에 이르기까지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모두 해버리고 말았는데, 이제 동이 터 오는 아름다운 시간에 그녀가 깨어나면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는데, 그럼 서먹해지지 않을까요. 그 서먹하고 무거운 침묵을 어떻게 감당하냐구요. 제가 이렇게 재미없고 시시한 놈이라는 걸 그녀도 알게 되겠죠. 저의 밑바닥을요. 그리곤 이렇게 생각하겠죠,

‘역시 병원신세를 진 놈은 시시하다. 그것도 정신병자는’.


동이 터오고 그녀에게 햇살이 푸르게 드리웠어요. 아름답더군요. 너무나 사랑스러웠어요. 제 이마와 입술에 자꾸만 입 맞추던 그 입술은 어떤 헐리우드 여배우의 그것보다도 아름다웠어요. 참으로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병원 침대에서 꿈꾸고 또 꿈꾸던 그런 장면이었죠.
그때 그녀가 깨어나려 하더군요. 햇살에 눈이 슬슬 부셔와 그녀의 잠을 깨우는 모양이었죠. 위기였습니다. 제 생애 마지막 아름다운 순간이 부서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그녀가 깨어나는 순간 끝나는 아름다움. 암흑과도 같은 사회의 따가운 손톱 속에 빨려 들어갈 것을 생각하니 숨이 막혀왔어요. 그녀가 눈을 슬그머니 뜨면서 제 얼굴을 보더군요. 그러곤 살짝 웃었어요. 저는 너무나 무서웠어요. 아, 감당할 수가 없는 압박감에...”

그가 눈물을 흘리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커피가 식어가고 있었다.

“목을 졸랐어요. 어쩔 수 없이 전 정신병자인지도 모르죠. 그 순간이 깨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있는 힘껏 그녀의 목을 조르고 졸랐죠. 미친놈이 힘이 세다 하던가요. 저는 정말 힘이 세었던 거 같아요. 그녀는 발버둥을 치려했지만 곧 의식을 잃었어요. 그리고 곧 목숨도 잃었죠.


그게 제가 벌려놓은 일이었어요. 제 잘못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어요. 아니, 저는 그녀의 목을 조르는 순간에도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일단 시작해버린 일을 멈출 수는 없었어요.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어요. 생명을 위협한 나를 바라볼 그녀의 눈빛을 감당할 수가 없었어요. 그럴 바에 그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나을 거라고, 저는 생각했던 겁니다.


저는 망연자실해서 그녀의 시체를 바라보았어요. 출근이 늦어지니까 그녀의 동료가 자꾸만 전화를 걸더군요. 그녀의 핸드폰에 ‘경미, 은실이’ 등의 발신자 명들이 잇따라 나타났어요. 그러다 절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은실이라는 여자였어요. 이게 제 이야기의 끝입니다.”

그는 단 한모금의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나는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물만 마셨다. 그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갈 모양이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자살을 할 생각입니다. 경찰이 여기에도 나타날 것 같군요. 그럼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그 사람은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아직도 가을의 농익은 빗방울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빗방울들은 마치 마녀의 날개에서 쏟아지는 차갑고 매운 비늘처럼, 이리저리 휘날리면서 도시의 표면을 적시고 있었다.


뒷골목의, 썩은 먼지가 가득 끼어있는 벽돌 틈에 빗방울이 스며들어가고 찐득찐득한 진창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나는 상상했다. 나는 한참을 커피숍에서 나설 수 없었다. 뉴스에는 창녀를 죽인 정신병자에 대한 짧은 보도가 나왔고 괴롭지는 않았지만 형언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커피숍의 공기는 서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