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
버트런드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을 처음 접했을 때, 적잖이 당황한 듯하다. 러셀의 표현에 따르면 젊은 비트겐슈타인은 이상하리만치 열정적이었고, 드높은 러셀의 명성 앞에서도 저돌적인 도전을 서슴지 않았다.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이 ‘마왕의 자존심을 가졌다.’고 표현했을 정도인데, 따라서 이 사제 간의 대화는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비트겐슈타인의 오만한 도전 앞에서 러셀이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고 평가한다. 이와 관련하여, 러셀은 그의 애인이었던 ‘오톨라인 모렐(Ottoline Morrell)’에게 보낸 편지에 비트겐슈타인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버트런드 러셀
위의 글은 러셀의 편지를 요약한 것이다. 러셀은 편지에서 자신이 비트겐슈타인의 반론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반론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크게 상처를 받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당대 최고의 철학자중 한 명이었던 러셀이, 어린 제자를 만나 자신의 사유에 결함이 있음을 인정하는 편지의 내용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애인에게 자신의 무력함을 고백하는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을지는 짐작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비트겐슈타인과 한동안 친밀한 사이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의 혁명적인 저서 『논리철학논고』의 서문을 써 주기도 했고, 이 책은 러셀의 서문 덕에 출간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논리철학논고』가 러셀의 서문 없이는 출간이 불가능했을 거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역시 러셀의 서문이 큰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둘의 친밀한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고 하며, 그 이유는 비트겐슈타인의 성향 때문이었으리라.
서양의 논리철학에서 중요한 획을 그었던 러셀과 비트겐슈타인. 이 둘의 만남은 서양 지성사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임은 분명하지만, 갈등을 전제로 시작한 비극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젠틀한 귀족, 버트런드 러셀과 젊고 오만한 비트겐슈타인이 만나면서 발생하는 갈등의 불꽃은 서양 근대 지성사의 드라마틱한 장면 중 하나다.
- 레베카 골드스타인,『불완전성』을 읽고
이 글은 책을 읽고난 후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쓴 것이며, 인용된 내용은 책을 읽고 난 후 기억해내서 쓴 것이므로 책의 본문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